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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창원의 구도심 골목 – 철제 셔터가 닫힌 오후의 거리

📑 목차

    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창원의 구도심 골목 – 철제 셔터가 닫힌 오후의 거리

     

    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창원의 구도심 골목 – 철제 셔터가 닫힌 오후의 거리

     

     

    바람조차 조용한 오후, 멈춰버린 거리의 시간 

    도시의 오후는 대체로 분주하다.
    차량이 끊임없이 오가고,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창원의 구도심, 즉 마산과 창동 일대의 오래된 골목은
    그 분주함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오후 두세 시쯤, 햇빛이 기울기 시작하고 바람이 잠잠해질 때면
    그 거리는 마치 도시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품는다.

    그 골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약간의 낯섦을 느꼈다.
    철제 셔터들이 줄지어 내려앉은 상점가,
    간판의 글자는 일부가 벗겨지고,
    유리문 안쪽에는 먼지가 얇은 막처럼 쌓여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멈춤’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고요했다.

    그런데 그 고요함 속에는 이상한 생명감이 있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데도,
    전봇대의 전선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먼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자전거 바퀴 소리 하나가
    이 정적의 공기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 소리는 이 도시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숨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리듬.

    사람이 적은 거리에서는 사소한 것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인다.
    하얀 셔터 위로 그림자가 기울고,
    닫힌 문 앞의 화분은 물을 기다리듯 마른 잎을 떨군다.
    그 작은 장면들이 모여 묘한 정서를 만든다.
    그건 쓸쓸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기분이었다.

    창원의 구도심은 한때 이 지역의 중심이었다.
    극장, 문구점, 양복점, 오래된 제과점이 있던 거리.
    그러나 대형 쇼핑몰과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 골목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곳은 여전히 ‘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였다.
    나는 그 기억의 냄새를 맡기 위해,
    오후의 햇빛이 사선으로 떨어지던 그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철제 셔터가 만든 그림자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 

    창원의 구도심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셔터의 질감을 계속 손끝으로 느꼈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는 햇빛이 반사되어
    미묘한 빛의 결이 생겼다.
    닫혀 있는 문들이지만,
    그 표면에는 수많은 손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존재의 증거였다.

    이 거리의 셔터들은 대부분 오래된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몇몇 가게의 이름은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벗겨진 표면이 오히려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금속 위에 남은 녹의 무늬는 마치 그림 같았다.
    그 무늬는 말없이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길가에는 작은 벤치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는 비닐봉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직 따뜻한 커피 캔이 들어 있었다.
    아마 근처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잠시 두고 간 것일 것이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거리에서
    그 따뜻한 캔 하나는 기묘하게 생생한 존재감을 발했다.
    그건 이 거리의 ‘조용한 온기’였다.

    멀리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와 신문이 들려 있었다.
    그는 한 상점 앞에 서서
    잠시 셔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가게는 그의 친구가 운영하던 곳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이 거리의 정적이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라는 걸 느꼈다.
    닫힌 문 뒤에도 여전히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오후의 빛이 스며드는 골목, 시간의 흐름을 따라 걷다 

    오후 세 시가 넘어가자
    햇빛이 골목 깊숙이 들어왔다.
    좁은 길 사이로 빛이 흘러들며
    철제 셔터 위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그림자는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같았다.
    그 안을 걸으면, 과거의 시간으로 스며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작은 이발소 앞에 멈춰 섰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유리창 안에는 여전히 낡은 가위와 빗이 놓여 있었다.
    그 도구들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듯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단순히 빛의 반사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녹아 있는 흔적이었다.

    길 건너편에는 오래된 간판이 있었다.
    ‘삼복당 한복점’.
    글자 중 일부는 떨어져 나갔지만,
    그 잔여의 형태가 오히려 아름다웠다.
    그 한복점의 유리문 안쪽에는
    빨간 천 한 조각이 남아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 천의 움직임은 이 거리의 유일한 ‘생동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흔들림이,
    이 거리 전체를 살아 있게 만들고 있었다.

    바람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철제 셔터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며
    짧은 ‘쨍그랑’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오래된 종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멈춰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골목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시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아주 느리게, 그리고 분명히 흘러가고 있었다.


    멈춘 거리 속에서 다시 움직이는 마음 

    햇빛이 점점 붉게 변해갈 무렵,
    골목의 공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처음 들어왔던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 거리의 진짜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멈춰 있음’에 있었다는 것을.

    닫힌 셔터는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림’의 형태였다.
    언젠가 다시 문을 열 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하루를 버티는 시간의 표정.
    그 표정을 이해하는 순간,
    이 거리의 정적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도시는 늘 변한다.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오래된 길은 사라진다.
    하지만 창원의 구도심 골목은
    그 변화 속에서도 ‘기억의 고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고집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이 거리를 ‘옛 창원’이라 부른다.

    나는 마지막으로 셔터 한쪽에 손을 올려두었다.
    차가운 금속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이 거리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도시가 너무 빨리 흐를 때,
    사람은 이런 느린 공간에서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다.
    창원의 구도심 골목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닫힌 문과 비어 있는 거리,
    그 안에서 사람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것이 이 길이 가진 가장 조용한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