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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인천 배다리 골목길 – 낡은 간판 아래 남은 시간의 그림자

📑 목차

    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인천 배다리 골목길 – 낡은 간판 아래 남은 시간의 그림자

     

    도시 속 조용한 산책 코스 인천 배다리 골목길 – 낡은 간판 아래 남은 시간의 그림자

     

    오래된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되는 시간의 향기 

    인천의 골목 중에서도 배다리 골목길은 유난히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도시가 빠르게 확장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지는 동안,
    이곳은 마치 그 속도를 거부하듯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는 그 고요한 저항의 풍경이 늘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오후, 흐린 하늘 아래 이 길을 다시 찾았다.

    골목 입구에는 오래된 간판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철제 간판,
    손글씨로 적힌 오래된 상호들,
    그리고 이제는 읽기조차 힘든 낡은 문패들.
    그 아래에는 여전히 문을 여는 작은 세탁소와 구두방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많았지만,
    시간이 덮고 간 자국도 분명히 남아 있었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예전 이곳이 바다와 가까워
    배를 띄우던 나루터였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여전히 바다의 기운이 느껴진다.
    공기 속에는 금속의 냄새와 함께 약간의 염분기가 섞여 있고,
    비가 오고 난 날이면 그 냄새는 더욱 짙어진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이 골목이 품고 있는 ‘시간의 층’을 느낀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조용함이다.
    배다리 골목은 요란한 상권도, 화려한 간판도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낡았지만 사라지지 않은 삶의 흔적’이다.
    세탁소에서 흘러나오는 다리미 소리,
    구두방의 망치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트럭의 엔진음이
    이 골목의 일상을 만들어낸다.
    그 모든 소리가 합쳐져
    이곳만의 조용한 리듬을 완성한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다.
    렌즈 속 풍경은 이상하리만큼 잿빛이었다.
    그러나 그 잿빛 속에는 묘한 온기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이 만든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도, 가게들이 문을 닫아도,
    그 온도만큼은 남아 있었다.


    낡은 간판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억의 무게 

    배다리의 골목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느리게 늙어간다.
    벽돌은 세월에 닳았고,
    간판의 철판은 녹이 슬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낡음이
    이 골목을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풍경’으로 만들었다.

    나는 어느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한때 문구점이었다고 한다.
    간판에는 ‘백양문구’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오래된 필통과 연필깎이가 놓여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사 가지 않는 물건들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골목의 시간을 지탱하고 있었다.

    문구점 옆에는 이발소가 있었다.
    유리문에는 흰색과 파란색의 회전등이 멈춘 채로 서 있었다.
    이발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바닥에는 여전히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는 세월의 먼지를 머금고 있었고,
    그 위에는 누군가의 땀과 대화, 그리고 웃음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이 골목의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생각했다.
    도시는 끊임없이 바뀌는데,
    왜 이곳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아마도 이 골목은 사람들의 기억을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한때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고,
    또 그 기억의 조각을 붙잡기 위해 걸음을 멈춘다.

    배다리의 간판들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언어다.
    손글씨로 써 내려간 상호는
    디지털 시대의 폰트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 글씨에는 사람의 체온이 담겨 있고,
    그 체온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간판들을 바라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결국 ‘기억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그림자가 머무는 골목 

    골목을 조금 더 걷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새로 포장된 도로였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울퉁불퉁한 오래된 골목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오른쪽, 오래된 길로 들어섰다.
    거기서부터는 공기의 냄새도 달랐다.
    벽돌과 먼지, 그리고 오래된 철제 문에서 나는
    묘하게 구릿빛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익숙했다.
    어릴 적 여름방학마다 놀러가던 외가의 골목 냄새였다.
    그때의 기억이 코끝을 타고 다시 스며들었다.
    비가 내린 날이면 외할머니는
    문 앞 돌계단에 물을 뿌리고,
    그 위에 앉아 수박을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의 시간은 느렸고,
    모든 것이 지금보다 단순했다.

    배다리의 골목에서도 그때와 같은 ‘느림’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도,
    바람이 부는 리듬도,
    모든 것이 한 박자 늦었다.
    그러나 그 느림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래된 도시가 주는 위로를 느꼈다.

    골목의 벽에는 낙서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어떤 것은 십 년은 되어 보였고,
    어떤 것은 어제 붙인 듯 새로웠다.
    그 모든 흔적이 이 골목의 시간을 층층이 쌓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낡은 광고지 한 장,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이 골목을 ‘살아 있는 기록’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길의 끝에서
    작은 책방 하나를 발견했다.
    간판에는 ‘배다리 헌책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책장은 빽빽했고, 책등마다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 권의 시집을 꺼냈다.
    그 시집의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지나쳐 갈 뿐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골목이 왜 아직 존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지나간 시간들이 머무는 자리’였던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남긴 빛 

    해가 지자 배다리의 골목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낡은 간판 위에 햇빛이 반사되어 번졌고,
    그 아래에는 작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 그림자는 마치 시간이 머무는 자리 같았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빛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었다.
    간판이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오래된 도시가 내는 숨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사람의 기억도 결국 이런 소리로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고, 잊히지 않고,
    그저 조용히 흔들리며 남는 소리 말이다.

    골목 끝에 이르자
    현대식 건물들이 다시 나타났다.
    유리창에 비친 불빛은 눈부셨지만,
    그 속에는 이상하게 온기가 없었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낡은 간판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노인의 발걸음,
    그리고 벽에 기대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배다리 골목길은
    사람들에게 ‘시간의 냄새’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 냄새는 낡았지만 따뜻하고,
    쓸쓸하지만 편안하다.
    사람은 그 냄새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다시 꺼내 든다.

    나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자,
    간판 아래 그림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골목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과 감정이 공존하는 ‘기억의 풍경’이라는 것을.